
오늘은 제52회 해남군민의 날이다. 해남군의회는 자매결연 도시인 경북 영덕군에 500만 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최근 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영덕군민들을 돕기 위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들이 의회 운영업무추진비를 아껴 마련한 것이다. 해남군의회는 “자매도시의 아픔에 함께한다”며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 성금은 크기보다 마음이 앞섰다.
반면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대응을 향한 시선은 냉담하다. 지난 3월 21일부터 시작된 전국 산불은 9일간 40여 곳을 태우며 75명의 인명피해와 6천 개가 넘는 시설물 전소를 남겼다. 그런데도 화재 원인은 성묘객 실화로 단정되었고,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가짜 뉴스’로 몰렸다. 정작 정부와 정치권은 철저한 진상 규명에는 미온적이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현장을 ‘무대’로 활용하는 데 급급했다.
산불 현장은 여전히 잿더미인데 정치인들은 여전히 ‘쇼’에 열중이다. 언론은 타오르는 화염보다 정치인의 방문 사진을 더 오래 비췄고,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은 이재민들의 “불 끄러 가자”는 절박한 외침에도 저급한 정치적 언사로 응답했다. 체육관 대피소를 기웃거리고 시장을 돌며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마치 인기 연예인의 팬서비스를 방불케 했다.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절망에 빠졌지만, 현장을 찾은 정치인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았다. 국회의원 월급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예산 편성도 결국 남의 돈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민간 기업과 지역 주민들은 조용히, 그러나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민심을 사고 있을 때, 이웃들은 팔을 걷고 물을 뿌렸다.
성금이란 돈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행위다. 정치적 쇼가 아닌 진심 어린 손길이 절실한 시간이다. 이번 해남군의회처럼 ‘보여주기’보다 ‘함께하기’를 선택한 사례는 작지만 울림이 크다. 이제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포즈’가 아닌 ‘행동’을 택하길 바란다. 재난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연대다.